가디언뉴스 김기홍 기자 | 많은 사람들이 은퇴 준비를 ‘얼마나 모아두었는가’에 초점을 맞춘다. 그러나 실제 은퇴 이후 삶을 결정짓는 것은 단순한 자산의 크기가 아니라, 예상치 못한 지출로부터 그것을 얼마나 지켜낼 수 있는가에 달려 있다. 지금 우리 사회는 국민건강보험이 잘 갖춰져 있어 큰 질병에도 생활비가 흔들리지 않을 것이라고 안심하는 경우가 많지만, 현실은 다르다.
보건·의료 통계를 보면 고령층 가계의 의료비 지출 중 비급여 항목이 차지하는 비중이 30%를 넘어선다. 특히 암·심혈관질환처럼 장기적이고 고비용의 치료가 필요한 질환은 대부분 최신 치료제, 표적치료제, 특수 검사 등이 비급여에 속한다. 이 경우 한 달 치료비만 수백만 원에 이르고, 몇 차례 치료가 이어지면 은퇴자금이 순식간에 소진된다.
많은 은퇴자들은 매달 350만 원 수준의 생활비를 기준으로 노후 계획을 세운다. 식비, 주거비, 교통비, 문화비 등 기본 항목에서 합리적 지출을 예상하는 것이다. 하지만 고액의 의료비는 이러한 재정 구조를 단번에 무너뜨린다. 실제로 한 경제 연구소 조사에 따르면, 은퇴 후 고액 의료비를 경험한 가구는 5년 뒤 평균 자산이 30% 이상 줄어드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단순한 일시적 충격이 아니라 노후의 삶 전체에 장기적인 타격이 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국민건강보험은 세계적으로도 우수한 공적 의료보험 제도로 평가받는다. 본인 부담률이 상대적으로 낮아 기초 의료비 부담을 크게 줄여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제는 급여 항목에만 해당한다는 점이다. 고령층이 실제 필요로 하는 고난도 치료, 항암 신약, 재활·물리치료, 간병 등은 상당 부분 비급여다. 다시 말해, 국민건강보험만으로는 현실의 의료비 리스크를 감당하기 어렵다.
특히 장기 요양이나 치매 발생은 가장 고통스러운 재정 리스크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의 장기요양보험 제도가 있지만, 본인부담률은 여전히 높고 서비스에도 한계가 있다. 결국 민간의 간병보험·치매보험 같은 보완 장치가 없다면, 장기간 돌봄 비용을 개인 자산으로 버틸 수밖에 없다. 이러한 구조는 은퇴 생활을 위협하는 가장 큰 변수가 된다.
은퇴 재정을 관리하는 데 있어 연금과 투자는 공격 라인이라 할 수 있다. 국민연금, 퇴직연금, 개인연금이 매달 안정적인 현금 흐름을 제공하고, 금융 투자로 추가적인 수익을 확보할 수 있다. 그러나 아무리 공격 라인이 강하더라도 수비수가 없다면 한 번의 위기에서 경기장은 무너진다. 보험은 바로 이 수비 라인이다.
실손의료보험은 의료비의 가장 기본적인 안전판이다. 암보험, 수술·입원 특약은 고액 치료비를 막아주는 장치이며, 간병보험·치매보험은 장수 사회 속에서 불가피하게 늘어나는 장기 요양 비용을 대비할 수 있는 수단이다. 또한 종신보험이나 사망 보장 상품은 가족의 생계를 지키고 상속·증여 부담을 완화하는 기능까지 한다. 결국 보험은 한 번의 돌발 상황에 노후 전체가 흔들리지 않도록 자산을 방어하는 방패 역할을 한다.
노후 생활비 350만 원은 결코 사치가 아닌, 평균적인 은퇴 가구가 ‘유지 가능한 삶’을 위해 필요한 적정 수준이다. 하지만 이 구조를 현실에서 유지하려면 비급여 의료비와 같은 불확실성을 어떻게 방어하느냐가 관건이다. 국민건강보험만으로는 부족하며, 보험을 통한 체계적인 리스크 관리 없이는 연금이나 저축이 제 역할을 할 수 없다.
전문가들은 “노후 재정은 수비 없는 공격이 될 수 없다”고 말한다. 버는 것만큼 지키는 것이 중요하고, 지출 구조를 흔들 수 있는 위험을 막아내야 한다는 것이다. 은퇴자의 진짜 행복은 많은 자산을 모은 데서 오는 것이 아니라, 뜻하지 않은 위기에도 안정된 생활을 유지할 수 있다는 ‘심리적 안전감’에서 비롯된다.
노후 준비는 축적만의 문제가 아니다. 준비된 자산을 오래 지켜내고, 예측 불가능한 변수를 최소화하는 것이 은퇴 생활의 핵심 과제다. 그 해답은 바로 보험이라는 방어막 속에 있다. 국민건강보험의 보호를 기본으로 하되, 보장성 보험으로 보완한 구조야말로 행복한 은퇴를 가능하게 하는 진정한 재정 전략이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