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처:JTBC
가디언뉴스 김재한 기자 | 정치자금이 공적 가치 실현을 위한 마중물이 아닌, 특정인의 인맥을 확장하고 공천권을 매수하는 ‘마케팅 예산’으로 전락했다.
김경 전 서울시의원이 남동생 명의의 공익재단을 후원금 세탁 통로로 삼아 현역 의원들에게 자금을 분산 살포한 정황이 경찰에 포착되면서, 정치권의 고질적인 공천 헌금 문제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고 있다.
단순한 금품 전달을 넘어, 법과 제도의 허점을 설계도 삼아 치밀하게 짜인 ‘자금 워크숍’의 실체가 드러난 것이다.
서울경찰청 공공범죄수사대가 주목하는 핵심 고리는 김 전 시의원의 남동생이 설립한 공익재단이다. 이 재단은 설립 서류만 존재할 뿐 실제 운영 기록이나 공익 활동 흔적은 전무한 ‘유령 조직’에 가까웠다.
경찰은 김 전 시의원이 이 재단을 단순한 단체가 아닌, 정치자금의 흐름을 왜곡시키는 자금 ‘중계기’로 활용했다고 보고 있다.
김 전 시의원은2022년 지방선거 당시 강선우 의원 측에 공천 대가성으로 의심되는 1억 원을 전달했다가 수사 선상에 오르자 이를 돌려받았다.
문제는 그 이후의 행보다. 돈을 돌려받자마자 김 전 시의원은 지인 17명을 동원해 1인당 법정 한도인 500만 원씩, 총 8,200만 원(최대 1억 3,000만 원 추산)을 다시 강 의원의 후원 계좌로 입금하는 ‘쪼개기 후원’을 실행했다.
이 과정에서 동원된 이들 상당수는 해당 재단의 명부에 이름을 올린 ‘회원’이나 ‘계약직’들이었다. 사실상 자신의 영향력 아래 있는 인적 자원을 자금 출처 분산의 도구로 활용한 셈이다.
김 전 시의원이 고안한 수법은 단순한 명의 빌리기를 넘어 시스템의 허점을 파고들었다. 그는 재단 직원이나 아르바이트생 계좌에 수백만 원을 먼저 입금한 뒤, 곧바로 연락해 “실수로 돈을 잘못 보냈으니, 지정하는 다른 계좌로 다시 보내달라”고 지시했다.
이른바 ‘착오 송금 위장’ 수법이다. 이 단계를 거치면 은행 기록상으로는 개인 간의 실수에 의한 반환으로 남게 되어, 선거관리위원회의 감시망을 뚫기 용이한 ‘청결한 장부’가 만들어진다.
하지만 이 돈의 최종 목적지는 현역 의원의 후원회나 보좌진의 계좌였다. 김 전 시의원은 법적 한도를 교묘히 피하면서 자신의 정치적 영향력을 증명할 수 있는 최적의 ‘워크플로’를 구축한 것이다.
경찰이 김 전 시의원의 정책지원관 PC에서 확보한 120여 개의 녹취 파일은 이번 사건의 결정적 ‘스모킹 건’이다. 녹취록 속 대화는 공직자라기 보다는 투자처를 관리하는 자산운용가에 가까웠다.
강 의원 외에도 민주당 중진 의원을 포함한 현역 의원 7~8명의 실명이 거론된 이 파일들에는 “빈손으로 갈 수 없지”, “같은 사람을 또 쓰면 눈치챈다” 등 구체적인 은폐 전략이 담겨 있다.
특히 김 전 시의원은 과거에 누구에게 얼마를 보냈는지, 어느 보좌진이 협조적인지 등을 리스트화하여 관리한 정황이 뚜렷하다.
의원과 보좌진, 예비후보들을 마치 ‘투자 포트폴리오’처럼 분산 배치하고 관리해 온 것이다. 이는 단순한 후원을 넘어 공천권을 획득하기 위한 장기적이고 조직적인 ‘정치적 투자’였음을 시사한다.
지난 29일 16시간의 고강도 조사를 받은 김 전 시의원은 금품 전달 사실은 일부 인정하면서도 “공천을 목적으로 한 대가성은 전혀 없었으며, 재단 의혹도 터무니없다”며 배수진을 쳤다.
자금을 받은 의원들 역시 “출처를 몰랐으며 인지 즉시 전액 반환했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그러나 이번 사건은 우리 정치자금법의 한계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재단 같은 껍데기 조직이 돈줄을 숨기는 방패가 되고, 지인 네트워크를 활용한 쪼개기 수법이 고도화될수록 현행 시스템으로는 이를 사전에 차단하기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수사팀 관계자는 “이번 사건은 정치자금이 인맥 네트워크를 키우고 공천권을 매수하는 도구로 변질된 전형적인 사례”라고 꼬집었다.
“이번 사건은 개인의 일탈을 넘어 정치자금이 인맥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독성 도구로 변질된 사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수사기관의 칼날이 녹취록 속 현역 의원들을 향해 예리하게 파고드는 가운데, 공천 시장에 스며든 부패의 독기를 완전히 걷어낼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